Page 108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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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4호 | 근대불교사서 史書 12 | 조선 후기 『대둔사지』의 찬술은 대
『대둔사지 大芚寺志』 ①
둔사 사적事蹟의 정리와 복원에만 국
한된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사상계
와 변화한 불교계의 동향에서도 적지
『대둔사지』 찬술의 않은 영향을 받았다. 『대둔사지』의
역사적 의미와 직접적인 찬술 동기는 17세기 중관해
불교계 동향 안中觀海眼(1567- ?) 스님이 찬술한 『대
둔사사적大芚寺事蹟』에서부터 출발한
다. 이 사적기는 『죽미기竹迷記』라고
오경후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도 불린다.
찬술자 해안스님은 그 행적이 널
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허휴정淸
虛休靜(1520-1604)의 법손法孫으로 사
승師僧이자 외숙인 뇌묵당雷黙堂 처
영處英 스님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의
승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스님은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처영·권율 장
군과 함께 3만여 명이나 되는 왜군을
격퇴했고, 경주에서는 전란으로 소
오경후 동국대 및 동 대학원 사학과에 실된 불국사를 중건하기도 했다. 스
서 공부하고 「조선후기 사지寺誌편찬과
승전僧傳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저서 님은 “임진년壬辰年(1592년)에서 정축
로 『조선후기 불교동향사』, 『사지와 승
전을 통해 본 조선후기 불교사학사』, 『한 년丁丑年(1637년)까지 장의총통승군仗
국근대불교사론』, 『석전영호 대종사』(공 義摠統僧軍으로 활약한 것이 한두 번
저), 『신흥사』(공저) 등이 있다. 현재 동국
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이 아니었다.” 해안스님은 생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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