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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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을 뿐, 일체의 모든 것이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아無我일 뿐이다. 제법무
아諸法無我이다. 하나의 점이 양도 아니고 음도 아니듯이, 말똥은 더럽지 않
고 바닷물은 짜지 않다. 모든 상相 이전의 무아無我일 뿐, 달리 무엇이 있지
않다.
육상원융六相圓融 화엄의 3조 현수법장 스님은 화엄 법계의 연기하는
1)
모습을 육상원융으로 설명하셨다. 육상은 서로 대립하는 세 쌍의 모습이
고, 원융은 원만하게 서로 융통함을 의미한다. 이 세 쌍은 총상總相과 별
상別相,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과 괴상壞相이다. 법장이 비유한 대로
집으로 설명해 보자.
집이 총상이고 서까래가 별상이다. 서까래, 기둥, 대들보, 기와 등 여러
가지의 별상이 있어야 집이라는 총상이 된다. 별상이 있어야 총상이 가능
하므로 총상은 별상에 의지한다. 그런데 집을 이루는 서까래는 원래 나무
토막이다. 이 나무토막이 서까래가 되는 것은 집이 있기 때문이다. 집의 모
든 것이 나무토막에 들어오면서 그 나무토막은 서까래가 된다. 집이라는
총상이 있어야 서까래, 기둥, 대들보, 기와 등 여러 가지의 별상이 가능하
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총상이 있어야 별상이 가능하므로, 별상은 총
상에 의지한다. 서까래가 집의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원만하고 다른 모든 것
과 융통하여 집을 이루므로, 원만 융통의 원융이 성립한다. 전체와 부분이
대립하지 않고 원융하면서 서로 의지한다. 기둥과 대들보와 기와와 집도
모두 그렇다.
서까래와 기둥과 대들보와 기와는 서로 다르므로 이상異相이다. 이들이
1) 해주, 『화엄의 세계』(1998), 민족사, pp.211-23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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