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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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전장에서 보내면서 지난至難한 조선의 상
             황과 암울한 불교계 현실을 눈으로 보고 겪었
             다. 스님이 만년晩年에 지리산 대은암大隱庵에

             주석하면서  찬술한  『금산사』·『화엄사』·『대

             둔사사적』은 단순히 망실된 사찰의 역사를 복
             원하려는 의미를 초월하여 전장戰場에서 성숙
             시킨 조선불교에 대한 인식이 주체적으로 확

             대된 결과였던 것이다.
                                                        사진 1. 『대둔지』 상권 표지.
               『대둔사사적』은 전란 이후 불교계에서 찬술
             된 가장 초기의 사서史書에 해당된다. 내용은
             사찰의 연혁과 전각, 고승의 행적 등 사찰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과 석

             존釋尊의 생애, 불교의 중국 전래, 고대 조선의 불교 전래와 유통 등을 수

             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찰 사적의 찬술은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원의 중
             건과 함께 진행되었다. 『대둔사사적』은 불교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문제점 또한 적지 않았다. 『금산사』(1635년)·『화엄사』(1636년)·『대둔사

             사적』(1636년)의 체제뿐 아니라 그 내용 또한 사찰의 연혁과 전각 등 사찰에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일한 것이다. 심지어 『불국사고금창
             기佛國寺古今創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찬술 과정에서 이용했던
             인용 자료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내용의 연혁이나 고대불교에 대한 역

             사적 사실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후기 불교계의 사지 찬술의 효시

             인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미기』가 지닌 한계성은 180여 년 후에 찬술된 『대둔사지』 찬자들에 의
             해 제기되었다. 『죽미기』가 『대둔사지』 찬술에 저본底本의 역할을 할 정도

             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8세기의 조선사朝鮮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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