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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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무념 무상 무주’라고도 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념 무상 무주’의 삼무에 입각한다면, 종래의 수증修
證에 필연적으로 변화가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돈오’가 ‘단계’, ‘점
차’를 부정한다면, 기존의 수증관에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단경』
에서는 ‘수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만약 간정看淨을 말하자면, 인성人性은 본래 깨끗한데 망념이 진
여眞如를 덮고 있는 까닭에 망념을 떠나면 본성은 깨끗해진다. 자
성自性이 본래 깨끗함을 보지 못하고서 마음을 일으켜 ‘간정’하면
오히려 ‘정망淨妄’이 일어나니, 허망함은 있는 곳이 없다. 이런 까닭
에 본다고 하는 것[看]은 오히려 허망함을 알아야 한다. 깨끗함은
형상이 없는데, 오히려 정상淨相을 세워서 이를 공부라고 말한다.
이렇게 지어서 보는 자는 스스로의 본성에 걸림이 있어 오히려 깨
끗함에 묶이게[淨縛] 된다. 17)
만약 착정著淨을 말하자면, 인성은 본래 깨끗한데 망념이 ‘진여’를
덮고 있는 까닭에 다만 망상妄想이 없다면 본성은 스스로 청정해진
다. 마음을 일으켜 ‘착정’한다면 오히려 ‘정망’이 일어나니, 허망함
은 있는 곳이 없다. 집착함[著]이란 허망한 것이고, 깨끗함은 형상形
相이 없는데, 오히려 ‘정상’을 세워서 이를 공부라고 말한다. 이렇
게 지어서 보는 자는 스스로의 본성에 걸림이 있어 오히려 깨끗함
17)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8c), “若言看淨, 人性本淨, 爲妄念故, 蓋覆眞如, 離妄念, 本性淨. 不見自性本
淨, 起心看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故知看者, 却是妄也. 淨無形相, 却立淨相, 言是功夫. 作此見者,
障自本性, 却被淨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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