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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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과 다신계茶信契
다산茶山은 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에 휘말려 전남 강진에
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 1818년 해배解配가 결정되어 강진을 떠나게 되었
다. 이에 제자 18명이 모여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
의 ‘차로 맺어진 계’인 다신계를 만들었다. 그 내용을 『다신계절목茶信契節
目』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유년(1801년) 겨울, 강진에 유배돼 동문 밖 술집에 붙어살았다.
을축년(1805년) 겨울은 보은산방에서 살았으며, 병인년(1806년) 가을
에는 이학래의 집으로 옮겨 살았다. 무진년(1808년) 봄부터 다산에
서 살았는데, 통틀어 헤아리면 귀향살이 18년에 읍내에서 살기를
8년, 다산에서 10여 년이었다. 처음 왔을 때, 주민들은 두려워하여
문을 찢고 담을 허물며 편안하게 접촉하기를 허락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기피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다산초
당으로 거처를 옮긴 10년은 다산의 학문이 무르익던 시기였고, 제자들에
대한 교육과 학문적 토론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여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실학 명저는 대부분 이 시기에 남겼다.
5)
차에 관한 저서로 『각다고』 , 『여유당전서』 의 차시茶詩, 『아언각비』 의 차
3)
4)
3) 각다고傕茶考:다산 정약용의 저서 『경세유표經世遺表』 중에서 차茶에 관계된 글이다. 중원에서 시행한 전
매제도를 검토하여 논하였음.
4)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다산 정약용의 저술을 정리한 문집으로 154권 76책으로 구성.
5) 『아언각비雅言覺非』:다산 정약용이 지은 나무 이름 따위의 200여 건의 어원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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