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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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선생의 진감선사비의 글씨는 바로 이 구양순-구양통풍의 글씨
          체로 쓴 것으로 보인다(사진 6). 이런 서풍에서 보면, 당나라 4대 서예가로
          꼽히는 안진경顔眞卿(709-785)의 장중하고 웅혼하며 살이 많은 둥근 분위기

          의 글씨는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의 서풍과는 근본에서 다르다. 통일신라

          말기 선사들의 비는 대부분 구양순체의 글씨로 쓰여졌는데, 예컨대 ‘보림
          사 보조선사탑비寶林寺普照禪師塔碑’, ‘월광사 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月光寺圓

          朗禪師大寶禪光塔碑’,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
          碑’가 그것들이다. 신라 하대에 최치원에 이어 구양순체를 구사한 대표적

          인 인물로는 그의 종제인 최인연崔仁渷(=崔彦撝=崔愼之, 868-944)과 최인연
          의 아들로 후진後晉에 유학을 간 최광윤崔光胤(?-?)이 있다.
           서예사적 면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가 직접 쓴 비의 전액이다. 여기

          에는 ‘양해동고진감선사비’라고 전서로 썼는데, 그 전서가 진시황시대에

          만든 소전이 아니고 그 이전의 올챙이 모양을 닮은 과두전蝌蚪篆의 글씨에
          버들잎 모양을 딴 유엽전柳葉篆의 풍이 가미되어 있다(사진 7). 이것을 보면,
          신라시대에 고대 문자 즉 고문자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사용한 것인가? 도

          당유학생은 당나라에서 고문자를 많이 접하고 이를 익혔는가? 아니면 최

          치원 선생은 이런 옛 전서의 글씨를 어떻게 학습하고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 하는 등등의 질문이 제기된다. 이 고문자에 대해서는 조
          선시대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 선생에게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연

          구 수집되었다. 허목 선생은 글씨를 멋있게 쓰기 위해 공을 들이는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면서 문자의 원리와 철학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보았다. 그의 고문운동古文運動의 자세와 문자에서도 고문자의 중
          시와 탐구는 연구체계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고대 문자가 어떠했는지는 모두 알기는 어렵다. 중국에서 남아 있는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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