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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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를 위해 다시 쓰
는 금속 역사 기록이기 때
문이기도 하고, 나아가 과
거의 역사를 바로 잡는 그
만의 역사운동 방식이기
도 하다.
그가 재현한 74.9cm의
<칠지도>의 경우, 진품은
사진 6. 은제 초화문 고려주자(보스턴 박물관 소장품 재현).
비록 일본에 있지만 그 재현품
을 통해 백제의 우수한 금속 공예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그릇된 역
사 왜곡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일본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칠지도는 칼 좌우로 3개씩
칼날이 가지 모양으로 뻗어 있어 육차모六叉矛라고 불렸고, 1873년
칼날에 새겨진 명문을 발견하면서 칠지도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칼의 양면에 금상감金象嵌 되어 있는 60여 자의 글자에는 칼이 백
제에서 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 백제 왕세자가 일본
왕에게 내린 하사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그 동안 일
본이 주장하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허구라는 것이 밝혀지
는 것이죠. 칠지도는 고대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역사의 산물이죠.”
백제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칠지도가 그 후손의 맥을 이어 오늘날 다시
태어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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