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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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고야산 정토진종 총본산 콘고부지金剛峯寺.

             를 한다는 점과, “죽으면 25보살이 정토로 안내하고, 그곳에서 다시 태어
             나 사바세계로 돌아온다.”는 정토사상이 결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처
             럼 고라이는 고야산에서 행해지는 불교문화에서 교리라는 겉껍질을 벗겨

             내면 그 내면에는 민속적 신앙세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고라이는 고야산을 서민신앙의 성지로 재조명했다.
               고라이는 불교는 서민을 구제하기 위해 존재하며, 불교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폐기되어야 한다는 불교의 실천성을 중요시했다. 아울러 서

             민(민중)이 함께 행하는 신앙실천이야말로 부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며, 이

             러한 실천불교의 역사가 바로 일본불교의 본류本流라고 주장했다.
               민중을 중요시한 불교사는 고라이만 주장한 건 아니다. 핫토리 시소服部
             之総나 가사하라 카즈오笠原一男 등이 ‘신란親鸞과 같은 가마쿠라 승려들의

             민중성’을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패전 후의 일본불교의 역할론이 재고되었

             기 때문이다. 다만, 고라이는 특정 시기나 특정 사상 속의 민중성이 아닌,
             일본의 오랜 역사 속에서 민중이 만드는 불교가 본래 종교라고 보았다. 민
             중을 떠난 신앙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니라며 핫토리 등과는 결을 달리했다.

               고라이는 “서민의 종교는 엘리트 종교를 이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특권층의 신앙이나 어려운 사상을 뽐내는 지식인들의 종교론보다 서민들
             의 소박한 신심이 종교의 본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면 고라이가 말하는 서민신앙과 일본불교사란 무엇일까. 간단하게나마 고

             라이가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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