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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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불교와 민속』, 1972)라고 당시의 충격을 묘사했다.
야나기다의 일본민속학은 고라이의 불교관을 확정시킨 계기가 되었다.
“야나기다 구니오의 저서들을 읽은 후, 나의 학문 방향을 결정했
다. 일본의 서민들은 문화현상을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변용시키거나 버리고 재구성해서
스스로 문화를 만들었다. 일본의 서민불교는 이렇게 성립되었다.
지금까지 배워 온 교단 중심의 불교역사에서 느낀 공허함이 일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 『불교와 민속』 중 일부 -
고라이의 민속학적 불교 연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불교민속학 연구의
첫 삽은 1951년 4월, 고야산대학에서 ‘일본 불교민속사’ 강의를 개설하면
서부터이다. 이듬해 학술지 『불교민속』을 창간하면서 일본에서 ‘불교민속
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의 창시자가 되
었다.
고라이가 불교민속학에 발을 내딛은 데
에는, 당시 민간에서 받아들이는 불교와 시
대조류와의 괴리감이 컸기 때문이다. 메이
지기 일본이 유럽의 실증적 원전 연구를 받
아들인 이후, 일본 내에서 승려들의 학식은
상향했지만, 서민들의 생활 속에 스며든 종
교로서의 불교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승려들이 종단의 대학에서 학문 사진 4 『 불교와 민속』(1972) 표지. 고라
이 시게루가 저술한 불교민속
으로서의 불교를 배운 후 자신의 사찰로 돌 학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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