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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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대학 교수로 근무했다. 그는 「일본불교 민속학 논술」로 문학박사학위
          를 취득했으며, 퇴임 이후에도 ‘일본종교민속학연구소’를 주재하며 많은
          후진을 육성하는 등 일본 불교민속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고라이 시게루는 『불교와 민속을 말하다』(1995)에

                             서 “어린 시절부터 불교는 사찰에 모신 조상 성묘
                             나 서민의 실생활에 봉사하는 것”이 불교에 대한 이
                             미지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불

                             교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한 시기는, 도쿄대학에

                             진학해서 기히라 타다요시紀平正美(1874~1949)의 강
                             의를 들은 이후부터이다. 기히라는 일본주의적 철
          사진 2. 기히라 타다요시.
                             학자로 일본신화나 일본에 유입된 모든 종교의 근
          저에는 ‘일본정신’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학자이다. 기히라의

          일본정신은 후일, 고라이가 “일본불교의 심층에는 일본인 고유의 신앙세
          계가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는 근간이 된다. 물론, 고라이의 이러한 주장
          에는 기히라 이외에도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国男(1875~1962)와의 접점 역시

          포함된다.

                                   교토제국대학 사학과에 재입학한 고라이는
                                 우연히 대학에서 주최한 야나기다 구니오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야나기다 구니오는 근대

                                 일본민속학의 창시자로 아시아의 많은 민속학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현재에도 야나
                                 기다 문파는 학계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야나기다의 민속학 강연을 들은 고라이는 “내

          사진 3. 야나기다 구니오.        고향에서의 생활이 갑자기 나의 학문을 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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