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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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면, 신도들의 법회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와 관련한 신
도들의 간단한 질문조차 답하지 못한다.”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고라이의
불교민속학이 시작되었다.
서민신앙으로서의 불교사, 『고야성高野聖』
고라이 시게루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고야
성高野聖』(1965)일 것이다. 『고야성』은 정토진종
총본산으로 알려진 고야산高野山을 서민신앙의
관점에서 성聖을 재고했다. 고라이는 고야산이
염불과 정토신앙의 성지로 알려졌지만, 에도시
대 막번체제의 영향과 종파의식이 강화되면서
이전의 역사가 잊혀졌다고 지적했다. 더해서
사진 5. 『 고야성高野聖』(2011) 초판 각 종파의 교리적 이해 방법만으로는 고야산이
표지. 1965년 간행.
왜 일본 최대의 보리처[성지]가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고라이는 모든 사물의 시점을 바꿔야만 진짜 일본불교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고야성이 개최하는 법회에서 행해지는 ‘관정灌頂’의례는 밀교적
교리로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관정의례가 갖는
실제적 의미는 망자에 대한 ‘생전의 죄업을 소멸’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다. 더해서, 쵸겐重源(1121~1206)이 고야산에서 정토신앙 그룹인 ‘영강迎講’
을 조직한 목적도 염불을 위한 게 아니라 민속적 통과의례로서의 ‘의사擬
死 재생의례’를 실시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일본인이 인생의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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