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22년 10월호 Vol.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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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를 찾아가 “진실로 맞기를 청하여 나가니, 가마에 타게 하여 친히 그 문도
7)
들과 함께 도열하였다.” 라고 한다. 영우가 다시 동경사로 돌아오자 그의 제
자들도 다시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송고승전』에는 당시의 재상인 최신
8)
유崔愼由가 동경사로 돌아온 영우를 지극한 예의로써 받들었다고 한다.
영우는 어느 날 상당上堂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노승이 백 년 후에 산 밑에서 한 마리 물소[水牯牛]가 되어 왼쪽 겨
드랑이 밑에다 ‘위산승모갑潙山僧某甲(위산의 승려인 아무개)’라고 다섯
자를 쓸 것이다. 이때 위산의 승려라 부르면, 또 물소이고, 물소라
고 부르면, 또 위산의 승려라고 할 것인데, 무엇이라고 불러야 맞
겠는가?”
9)
이 구절은 후대에 다양하
게 인용되는 구절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뒤로 미루겠지
만, 이후 영우는 대중大中 7년
(853년) 정월正月 9일 양치질
과 세수를 하고 나서 편안히
앉아 태연히 열반에 드니, 세
수가 83세이고 법랍은 64세
사진 5. 동경사 대웅보전.
7) [元]念常, 『佛祖歷代通載』 卷16(大正藏49, 640c), “固請迎而出之, 乘之以已輿, 親爲其徒列.”
8) [宋]贊寧等撰, 『宋高僧傳』 卷11(大正藏50, 777c), “又遇相國崔公愼由, 崇重加禮.”
9)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9(大正藏51, 265c), “老僧百年後向山下作一頭水牯牛, 左脅書五字
云: 潙山僧某甲. 此時喚作潙山僧, 又是水牯牛, 喚作水牯牛, 又云潙山僧, 喚作什麽卽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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