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고경 - 2022년 12월호 Vol.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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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반면, ‘번煩’은 허리 부분을 근원으로 둔
욕망과 망념을 생동시키는 액체가 척수를 통해 가슴과 복부에 집
결하는 상태이다. 더해서 뇌의 움직임을 덮어 방해하는 것을 ‘무명’
이라 한다. …… 그 결과, 탄잔이 이해하는 범위에서는 신체기관의
질병은 ‘혹병惑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불교철학자로서의 하라 탄잔과 현상즉실재론과의 관계」(1998) 중에서-
탄잔이 『시득초』를 간행할 당시, 일본은 신기관神祇官을 통해 신도국교화
를 진행하면서 신불판연령神佛判然令에 따른 폐불훼석이 심화된 시기였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불교의 위기감은 교토에서 여러 종파가 합심해서 연
합단체인 ‘제종동덕회맹’(1868)을 결성케 했다. 이 회맹은 건백서를 통해 활
동했고, 불교학교인 ‘총횡總黌’을 설립했다. 탄잔 역시 쵸도쿠인長德院 주지
로서 회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72년 메이지 정부는 신기성을 폐지하고 교부성敎部省을 설치해 신도와
승려는 모두 교화에 종사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불교 각 종단에 교도직敎
導職을 10명씩 임명하도록 했는데, 조동종단은 탄잔을 비롯해 10명을 교도
직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탄잔은 교도직 대강의大講義에 임명된 뒤, ‘삼조교
칙三條敎則’과 관련한 출판물 법령을 위반하는 죄를 짓게 된다. 당시, 탄잔
은 교도직뿐 아니라 종교국에서도 일하고 있었는데, 조동종 종무국은 법
률에 손을 적신 자는 종단 내에 둘 수 없다는 구실로 교도직과 함께 승적
을 박탈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는 승적을 박탈당한 1873년부터 도쿄 아사쿠사에서 역술인 신분으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시기에 탄잔은 서본원사 주지인 오타니 고
손大谷光尊(1850~1903)에게 발탁되어 츠키지 별원築地別院에 초빙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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