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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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로에리치가 멀리 카일라스산까지 순례를 했다는 사실은 그가 영적인 구도자라는 것을 말해 주
               고 있다.


          행 모습을 즐겨 그렸다.

           그러나 내가 그를 주목하고 내 그림의 멘토로 삼고 있는 대목은 무려

          한 세기 전에 티베트적인 속살을 누구보다도 일찍 발견하고 그것을 서구
          적이고 현대적인 화폭 위에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티베트 풍이
          강한 만년의 작품들 앞에서는 한참이나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이들 작

          품들은 히말라야 설산의 전통적인 소재들이 다양한 하늘 색깔 아래서 저

          마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때로는 황량한 대지 속에 살고 있는 뭇
          중생들을 보살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만의 독특한 언어로 풀어내는 따
          듯한 작품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그동안 내가 그렇게도 그리고 싶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받는 첫 번째 느낌은 ‘선기禪氣’라기보다
          는 ‘영기靈氣’에 가까운 기운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은 불세출의
          여타 거장들이 ‘편년체 미술사’를 쓰기 위한 수단으로 단지 시대적 선두

          주자라는 이유로 거장 대접을 해 주는 것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띠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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