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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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런 유기적·통전적 세계관을 가지면 앞에서 예거한 것처럼 자
          연스럽게 나의 나됨을 비롯하여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남과 나의 구별이 없어지기 때문에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참된 의미의 자비慈悲가 가능해집니다. 영어로 자비
          를 ‘compassion’이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 ‘함께(com) 아파함(passion)’입
          니다. 자연의 훼손도 나의 아픔이 됩니다.

           셋째, 이런 세계관을 가지면 편견이나 옹고집에서 해방됩니다. 모든 것

          이 관계에서 규정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독단적이나 독선적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똑같은 책상이라도 아이에게는 너무 높고 거인에게는 너무
          낮을 수 있고, 또 그 책상이 공부할 때는 책상이라도 올라서서 전구를 바

          꿀 때는 사다리도 될 수 있고, 걸터앉으면 의자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사

          물에 불변하는 본질이 있음을 부정하는 이른바 ‘비본질론적’ 입장에 서게
          되므로 어느 한 가지 견해를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심층적 안목을 지닐 수 있게 된다면 불교는 빌어서 복

          받고 죽어서 극락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유와 환희를 맛

          볼 수 있음을 가르치는 종교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1)














          1)  화엄사상에 관해 좀더 자세한 것은 오강남,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현암사, 2011), pp. 201~218를 참조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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