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P. 171
상황이었다. 따라서 포교승들은 각 지역의 유지들이나 지식인들과 우호적 관
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의 초기 포교단계에서는 한시漢詩 교류가 중
요한 역할을 했다. 핫카 역시 시를 통해 상해 문인들이나 불교학자들과의 교류
를 시작했다. 핫카의 저서 『잡록雜錄』, 『서당시고西塘詩稿』, 『서당정축시고西塘丁
丑詩稿』에는 이 시기의 기록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잡록』은 교토에 상경해서부터 교부성이 폐관될 때까지 작성한 한시와
상해 별원의 회계장부와 규칙, 상해 별원이 출판한 서적들의 자료 등이 기
술되어 있다. 『서당시고』는 유럽에서 귀국(1873)한 이후부터 1875년경까지
의 한시들을 수록했다. 권두에는 청말 문인인 진만수陣曼壽(진종 본산 중국어
교사), 전자금錢子琴, 장문호蔣文虎(상해 별원 상해어 교사), 왕야매王冶梅 등 모
두 동본원사와 관련 있는 중국인들의 서문과 서평을 실었다.
권말에는 핫카 자신이 발문을 작성해 모상린과 제옥계를 알게 된 경위
와 전자금의 문장과 명성을 소개했다.
『서당정축시고』는 교부성이 폐관된 이후부터 상해 도착 직후까지의 한
시들을 수록했다. 여기에는 상해 문인인 양경홍梁景鴻과 모상린毛祥麟이 발
문과 서평을 적었다. 핫카의 시에 대해 진홍고陳鴻誥는 “글이 방대하고 기
운이 청아하다. 격률格律이 엄격하다.”고 적당히 총평했다. 모상린은 “글에
오자가 있다”는 평을 남기는 등 핫카
의 시는 상해 문인들에게 크게 평가
받지 못한 것 같다.
이와는 별개로 『잡록』에는 흥미로
운 기술들이 있다. ‘메이지 11년(1878)
1월 경비, 6원 설교 제78호 백부 인쇄
제본’, ‘메이지 11년 4월 경비, 9엔 50 사진 5. 『서당시고西塘詩稿』(1877).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