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P. 166
에 불과하다고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오죽하면 현학파들을 ‘현학 귀신들’
이라고 폄하해서 불렀겠는가.
동방문화파와 현학파를 계승한 웅십력
웅십력의 불교사상은 기본적으로 현학파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다. 현학
파가 웅십력이 주장하는 ‘본체와 현상의 불이不二[體用不二]’의 이론적 배경
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과학파는 ‘현상은 우주의 본체’라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주체의 직접적 감각지 외에 모든 것은 실재성이 없다는 것이다. 과
학파의 이러한 실증주의 관점과는 상대적으로 현학파는 물질 현상 배후에
신비한 우주 본체가 존재하며, 이 본체는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라
고 주장하였다.
결국 과학파는 실재를 현상으로 귀결하고 현상을 감각으로 보아서 물질
의 실체를 부정한 반면, 현학파는 실재를 물질 현상 배후의 초경험적인 본
체와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과학파와 현학파는 모두 서로 다른 각
도에서 본체와 현상을 이분한 것이다. 웅십력은 과학파는 실체를 인정하
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학파는 실체가 있다고 보지만 현상을 초월하여 존
재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과학파와 현학파의 두 관점을 모두 비판하
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주 본체는 과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기본적으로 현학파의 입장을 계승·발
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