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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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0호 |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27 | 지난 호에서는 마츠모토 핫카松本
마츠모토 핫카 ②
白華(1839~1926)의 유럽 시찰을 중심
으로 이야기했다. 1873년 8월에 귀국
한 핫카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
通의 배려로 교부성에서 다시 근무하
메이지 초기의 게 되었다. 하지만 1877년 1월 교부
중국 포교활동 성이 폐관되면서 실직하게 된다. 교
부성이 폐관된 데에는 1875년 2월에
진종의 4대 교파가 대교원大敎院을
지미령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이탈하면서 대교원이 해산했기 때문
이다. 그 결과 신도와 불교의 합병은
금지되고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보장
되었다. 그간 신불합병의 입장이던
교부성은 존재 이유가 사라지면서 자
연스럽게 폐관의 수순을 밟았다.
핫카는 부서를 옮겨서라도 메이지
정부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
다. 하지만 인연이 있었던 에토 신페
이江藤新平가 정한론征韓論에 패배해
하야했고, 산죠 사네토미三条実美 역
지미령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 시 정한론으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
수. 일본 교토 불교대학에서 일본미술사
었다. 핫카는 자신을 발탁했던 오쿠
를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천대, 동국대 등에 출강했다. 현재 아 보 도시미치에 대해서 ‘모공, 나를 발
시아 종교문화 교류에 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탁하고 교부성 관리에 임명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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