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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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개혁은 본산 개혁, 해외 종교상황 시
             찰, 번역국 개설, 영국에 유학생 파견,
             금교지禁敎地 및 해외포교, 교육제도 개

             혁 이상 6가지로 압축된다. 이중 핫카

             는 해외시찰과 해외포교에 참여했다.
             번역국과  유학생  파견은  산스크리트
             연구를 위한 것이었고, 금교지 및 해외

             포교 대상은 일본 국내의 홋가이도·

             카고시마·오키나와·시마네와  해외
             의 중국과 조선이 포함되었다.
                                                  사진 3. 에토 신페이江藤新平 초상화.
               가장 먼저 중국 포교를 위해 건너간

             이는 오구루스 코쵸小栗栖香頂(1830∼1905)이다. 그는 메이지 6년(1873)에 중

             국으로 건너가 북경에 체류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각 지역을 시찰
             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 인도의 불교가 3국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
             다. 나아가 티베트 불교와 연계하고 남경을 포교의 거점으로 삼을 것, 아

             미타여래 이외에도 태신궁太神宮과 공자를 함께 모셔야 한다고 진종 본산

             에 건의했다.
               당시 동본원사 측은 서본원사(정토진종 본원사파) 측과 대립관계에 있었다.
             서본원사가 조슈벌長州閥의 에토 신페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자 동본원사는

             조슈벌에 포함되지 않는 메이지정부 요인과 관계를 강화시켰다. 원래 동

             본원사와 에토 신페이는 호의적 관계였지만 에토가 자신의 정적인 오쿠보
             도시미치에게 숙청당하자 동본원사는 에토를 대신해 오쿠보와의 관계를
             구축했다.

               메이지 9년(1876) 동본원사는 포교영역을 확장해 오키나와와 상해에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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