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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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어졌고,  1959년에는 대규
             모 무력시위까지 벌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국왕의  통치권을  이양

             받은 14대 달라이라마 텐진갸초

             와 정부 각료들은 중국 군대의 무
             력진압과  체포설에  두려움을  느
             껴 1959년 티베트 본토를 탈출하

             여 인도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에  티베트인들은  국왕이자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하늘같이
             신봉하는  달라이라마를  따라  고              사진 4.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 근교 햄자Hemja
                                                   삼거리 부다촉Buddha chowk에서 좌회전
             국을  떠나  히말라야를  넘어오는                   하면 난민촌이 나온다.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티베트 민
             족의 대규모 망명사태이다. 1959
             년부터 1962년까지 티베트를 탈

             출해 온 초기 난민들이 8만여 명

             에 달하고 이어서 대규모 저항운
             동이 벌어진 1986년부터 1996년
                                              사진 5.  빨키엘난민촌 안내판. 정식 명칭은 ‘따시빨
             까지  사이의  제2기  난민들이
                                                   키엘 티베탄난민촌Tashi Palkhiel Tibetan
                                                   Refugee Settlement’이다.
                                    4)
             18,7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
             나 티베트 국경지역의 경비가 강화된 2008년부터는 난민의 숫자가 급격


             4)  인도의 네루 수상은 ‘Tibetan Rehabilitation Society’를 조직하여 1960년 12월 16일 데라둔 모소리
               Dehradun Mussorie에 최초로 난민촌을 세워서 3천여 명을, 다시 미싸마리Missamari에 6천여 명 그
               리고 과거 영국 전쟁포로 수용소이자 부탄 국경인 서부 벵갈 부사두아르Buxa Duar에 9천여 명을 수
               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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