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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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게 치부했다.
오구루스는 중국인의 성정이 서양인을
매우 싫어하고 조선과 일본을 좋아하지만,
조선에는 인물이 없다고 했다. 중국은 개화
하기 위해서 일본의 충고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위세나 위협에는 순응
하지 않을 것이고, 교사가 가르치는 것 역
시 설득력이 없다. 승려가 먼저 건너가 진
종의 극락왕생의 길과 현생의 편리함을 제 사진 4. 『 오구루스 코쵸의 청말 중국체
험』(2016).
공하면 중국인은 황국의 간곡함에 감탄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의 민의를 얻기에는 진종이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진종이 흥하고자 한다면, 만리장성의 동쪽에 사찰을 건립해야 한
다. 만리장성 서쪽에는 라마교가 번창해서 회교도 미치지 못한다.
남경을 중앙으로 해서 사찰을 건립할 수 있다. (진종은) 본원타력本
願他力과 육식대처의 이점이 있다. 학교를 세우고 교화시키기 위해
매일 설법회를 열면, 중국 승려들이 질투하고 숨어서 욕할 것이다.
하지만 후에는 모두 귀의할 것이다.”
중국포교 대상 지역을 찾는 계획은 구체적이면서도 중국 승려에게 육식
대처의 이점을 알리겠다는 그의 계획은 다소 일방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결국 오구루스의 진종 포교 계획은 조선에도 기본틀이 그대로 적용되는 등
향후 일본불교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
오구루스는 구체적으로 중국인을 귀의시키기 위해 3가지 안을 제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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