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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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며 12년을 보내게 된다. 당시 기술을 배울 때는 도면이 있었던 것도 아
니었고, 도면이 있다고 한들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낮에 실컷
혼나고 밤에 이를 갈며 혼자 만들어 봐야 겨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
었으니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는 1987년 26세에 드디어 목공소를 차려서 독립하게 된다. 지금의 북수
동 성당 뒤 초가의 8평 남짓한 작업장이었다. 나이로는 어리지만 이미 오랜
기간 나무 작업에 익숙해졌고 기술도 좋아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때이다. 나무 한 수레, 기본 연장 두 벌로 초라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수원에
서 유명했던 소목장 이규선 선생에게 10년 동안 배운 기술이 그에게는 든든
한 밑바탕이었고, 무엇보다 문을 제작하는 일은 그에게 신명이었기에 독립
적인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가 제작하는 창호는 문양별로 완자창卍字窓, 세살문, 빗살문, 꽃살문 등
이다. 고급 문일수록 창살 수가 많은데, 흠 하나에 0.1mm의 오차도 허락되
지 않아 제작에 공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창호의 최고는 역시 꽃살문이
다. 이 창살은 멀리서 보면 사선의 격자무늬 같지만, 자세히 보면 벌집처럼
육각무늬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반복되는 단순한 패턴처럼 보이지만, 자세
히 보면 정교하게 조각하여 짜맞추는 고급기술이 필요한 분야이다.
꽃살문의 완성된 꽃무늬 하나를 만들려면 여러 조각을 깎아 결합해야 한
다. 모양대로 깎아 간단하게 붙이는 게 아니라 사개물림과 엇갈리게 물리
는 방법으로 문살을 만들어 결합한다. 각각이 분리되지만 보는 이로 하여
금 하나여야 하기에 과학과 수학 계산이 절묘하게 딱 들어맞아야 한다.
경복궁, 광화문, 화성행궁, 남한산성 등 국가 중요 문화재는 물론 양평
이항로 생가, 여주 명성황후 생가, 이승만·최규하·조병옥 등 유명한 인
물들의 집에는 그가 만든 문이 달려 있다. 1969년 용인 성불사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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