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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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쟈빠띠를 상처한
왕에게 시집보내서 어
미 잃는 조카 싯다르타
를 대신 키우게 하였다.
현재의 데바다하에는
거창한 역사적 고대 유
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싯다르타 붓다의 생모
사진 3. 바와니뿌르 경내에 밑기둥만 남아 있는 아쇼카왕의 석주.
마야데비의 집터라고
전해 오는 바와니뿌르(Bhawanipur)와 동생 프라쟈빠띠(Prajapati)의 집터라
고 전해지는 칸야마이(Kanyamai) 유지가 보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역사
적 사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인 아쇼카 석주가 남아 있긴 하
지만 아쉽게도 밑기둥만 남아 있는 석주에는 비문이 없어서 꼴리아 왕국과
마야데비 가문의 역사를 소상하게 밝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연못’을 뜻하는 ‘데바다하’란 말의 어원에서 그 성격을 유추해
보면 당시 이곳은 모종의 정화의식을 치르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싯다르타 태자가 어릴 적부터 이런 종교적인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훗날 ‘햄릿형 인간’을 거처 출가로 이어지는, 수행자로서의 오롯한 삶을 걷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란 역설적 추론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태자의 처갓집 데바다하
두 왕국 간의 인연은 비단 태자의 부모 대 뿐만이 아니었다. 마야데비와
프라쟈빠띠 자매의 조카 되는 야소다라 공주가 혼기가 되었을 때 당시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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