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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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선문에 전하는 옛날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동자승이 주방장 스님의 심부름으로 기름을 사러 나갔다. 주방
장 스님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동자승은 기름을 사가지고 돌아오면서 기름에만 신경을 쓰느라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돌부리에 걸리
고 구덩이를 헛디뎌 기름을 태반이나 쏟고 말았다. 동자승은 주방
장 스님의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동자승이 두 번째 기름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노스님이 나
와서 주방장과 다른 당부를 했다. 기름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자신에게 말해 달라는 것이었
다. 동자승은 돌아오면서 들고 있는 기름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노
스님이 당부한 대로 시야를 열어 풍경도 보고, 농부가 밭가는 것도
보고, 아이들이 노는 것도 보고, 노인들이 바둑을 두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해서 사찰에 돌아왔는데 기름이 쏟아지지 않았다.”
운전을 할 때도 앞만 뚫어지게 주시하면 위험하다. 앞을 주시하되 시선
을 나누어 양 옆과 뒤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야 급정거, 급가속 없이 물
흐르듯 안전하게 차를 운전할 수 있다. 고요함과 비춤의 동시 실천, 상적
상조의 원리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이 상적상조의 법문에서 그 고요함과 비춤의 불이성에 주목해야
한다. 고요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밝은 비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
기 때문이다. 그것은 등불과 등불의 빛이 둘이 아닌 것에 비유되기도 하고,
거울과 거울의 비춤이 둘이 아닌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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