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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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이 끊어지면 포장도로를 걷기도 합니다. 욱수지 쉼터에서도 잠시
             앉아 쉽니다. 성암산 자락이 못물 위에 얼비칩니다. 저수지 저쪽에 커다란
             알바위가 드러나 있습니다.




                로드킬


               좁은 포장도로 위로는 자동차가

             예상외로 많이 다닙니다. 비켜주

             면서 걷느라고 신경이 쓰입니다.
             자동차가 뭔지도 모르는 야생동물
             에게 이 길은 위험한 길입니다. 과

             연 야생동물이 로드킬 당한 흔적

             이 수없이 많습니다. 다람쥐, 두꺼
             비의 사체가 LP 판처럼 납작하게
             굳어서 추상화되고 있습니다. 최

             근에 로드킬 당한 다람쥐 사체는

             한 폭의 추상화처럼 우리 마음을                사진 3. 로드킬 당한 채 풍화되어 가는 다람쥐 사체.
             할퀴면서 풍화되어 갑니다. 비명
             횡사한 사체이지만 이 추상화에는 아직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

             습니다.

               유기물이 어느 순간 무기물로 변해 버리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한 개
             인의 가장 눈부신 업적마저도 한 줌의 재가 될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사
             람이 있습니다. 그는 임종의 순간, 한 개체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임

             종의 눈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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