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P. 61

여 등과 같은 궁극의 차원을 중도로 꿰었다는 점에서 그 이理적 평등성에
             대한 강조가 뚜렷하다.



                수행[行]을 책려하는 법문: 『선문정로』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이해는 필연적으로 힘 있는 바른 수행으로 들어가
             게 되어 있다. 성철스님은 믿음을 일으키고 이해를 심화시키는 선행법문

             을 전제로 하여 본격적인 화두 참구의 실천에 들어간 청법자들을 위해 『선

             문정로』를 설했다.
               성철스님의 법문은 기본적으로 모두 선 법문에 속하지만 내적으로 다시
             나눠 보면 『기신노트』나 『백일법문』은 교학적 법문에 가깝고,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은 일체의 교학적 지해를 털어내고 전념으로 선을 실천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도록 책려하는 본격적인 참선 법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선문정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있어서 앞의 차원에서 행해진 법문과 차
             별화되는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교학적 지식과 이해, 즉 지해를 철저하게 배격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알고 이해하는 일과 실제로 생사에 자유자재한 해탈의 차원에 도달
             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선 수행에 전념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번뇌 망상이든 수승한 지해이든 모두 삿된 것이고 악한 것이다.

               둘째, 『선문정로』는 불법교리의 의미 범주를 극단적으로 축소하는 법문으

             로 일관한다. 무심의 실천과 무심의 완성이 아닌 일체의 이론과 과정과 지위
             와 입장에 대한 최소한의 의미 부여조차 거부한다. 『선문정로』는 선의 근본
             이 아닌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부정하고 배제하는 법문이다. 그것은 노장사상

             가나 도교의 도사들까지 포용하여 세속을 벗어난 수행의 의의를 밝히고자



                                                                          59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