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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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선문정로』가 있다. 여기에 깨달음의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낸 『본지
풍광』의 법문이 더해진다. 물론 이 법문들이 단계별로 명확하게 구분되
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각 단계는 다른 단계를 포함하기까지 한다. 무
엇보다 신해행증의 모든 단계에 화두 참구를 강조하는 법문을 전제로 하
고 있다는 점에서 성철스님의 법문은 오직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다
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성철스님의 법문을 신해행증의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
은 스님의 법문을 넓게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고, 『선문정로』의 실천에 앞
서 선행해야 할 학습 내용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도 스님의 법문 상호 간에 일어나는 충돌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지평이 확
보된다. 예컨대 ‘책 보지 마라’는 수좌5계의 항목이 그렇다. 성철스님은 책
을 보는 일을 배척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믿음
차원의 법문인 『영원한 자유』에서는 “종교가 그 생명을 유지하려면 객관적
으로 증명이 되는 뚜렷한 이론 체계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취
하였고, 이해 차원의 법문인 『백일법문』에서도 ‘말과 문자에 의한 설명’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에 비해 『선문정로』에는 ‘언어문자에 대한 배척’의 입장이 뚜렷하다.
앞의 두 단계와 그 입장이 충돌한다. 그렇다면 성철스님은 문자를 통한 교
리의 학습을 권장한 것인가? 배척한 것인가? 이 상반된 입장을 하나의 동
일한 지평에 펼쳐놓으면 내적 충돌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이러한 내적 충돌은 청법자의 차원에 따라 설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일
어난다. 따라서 법문을 차원별로 나누어 보면 그 충돌이 본질적이지 않다
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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