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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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2.18)이다. 『백일법문』은 그 직전 해인 1966년 운달산 김용사의 조실로
서 행한 운달산법회(1966.1.12.~1966.2.8.)의 50일 법문을 전신으로 한다. 운
달산법회에서 설한 법문은 그 주제를 통해 볼 때 그 내용이 『백일법문』과
거의 동일하다.
운달산법회의 청법대중은 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부 학생들이었다. 믿
음 차원에서 행해진 법문인 『영원한 자유』의 청법대상도 대학생불교연합
회 학생들이었다. 어째서 성철스님은 똑같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차원을
달리한 설법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대불련 산하 구도부의 성격 때문이었
다. 구도부는 1965년대 봉은사 대학생수도원에 입소하여 사찰에서 생활하
며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절에서 수도하던 대학생 수
행 공동체였다.
그러니까 당시 구도부의 학생들은 출가승을 뛰어넘는 강한 수행의지와
실천력을 갖춘 본격적인 수행자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게 『백일법문』과
동일한 수준,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참선 실천을 요구했던 것은 당연한 일
사진 3. 1965년 김용사에 모인 대학생 구도부 학생들과 함께한 성철 큰스님(뒷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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