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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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지 못한 아쉬움이 밀
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몸은 1층에 있었기에
가이드를 졸라 대신에
오늘의 주인공 탕동겔
4)
뽀의 벽화 한 장은 건 사진 7. 다리 도사님께 유등잔油燈盞을 공양하는 필자.
질 수 있었다.
보시행으로 회향한 탕동겔뽀의 생애
사원 밖으로 나와 별관에 마련된 기도실로 들어가 다리도사님 진영이
걸려 있는 족자 앞에서 버터 등잔에 불을 붙이면서 또 하나의 그의 업적
인 <아지라무>가 생각이 나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현재 부탄에서는 그
것을 공연하는 곳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이 사원의 창건주 탕동겔뽀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그는
차원 높은 딴트라 수행을 완성한 수행자로서 티베트 불교의 샹빠 -까규
(Shangpa Kagyu) 지파의 전승인이기도 하지만 그외에도 대장장이, 건축
5)
가, 토목기사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대설산을 넘나들며 드넓은 설
역 고원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대여행가이기도 하였다.
4) 이 벽화는 아마도 1841년 25대 제켐뽀(Je Khempo) 세랍겔짼(Sherab Gyeltsen)의 지시에 따라 중수작업이
이루어질 때 추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5) 11세기에 큥뽀날요르(Khungpo Naljor)에 의해 창시되었다. 인도 구도여행을 떠나 전설적인 다키니 요기
인 니구마(Niguma)를 만나 감화를 받고 문하생으로 들어가 ‘나로파 6법’ 갈래의 수행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큥뽀는 ‘상(Shang)’이라는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제자들을 모아 가르침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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