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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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난존자는 점심때가 다가오자 발
                  우를 들고 탁발을 나갔습니다. 어느 마을의 우물가를 지나다가 마
                  침 목이 말라 우물가로 다가갔습니다. 그곳에는 한 처녀가 물을 긷

                  고 있었습니다. 아난존자는 그 처녀에게 물 한 그릇을 떠 줄 것을

                  정중하게 청하였습니다.
                  처녀는 웬 잘생긴 수행자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이미
                  가슴이 쿵쿵거리고 있던 터였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아주 정중

                  한 태도로 부탁하는 것을 보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재차 물을 떠줄 것을 청하는 수행자에게 그 처녀는 물을 떠줄 수 없
                  노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신분이 사성계급 중에서 가
                  장 미천한 ‘수드라’(노예계급)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난존자는 자신은 세속의 모든 차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수행자이기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고 대할 뿐이라고 말하며
                  재차 물을 떠주기를 청했습니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아랑곳하
                  지 않고 미려美麗한 사람이 아주 정중한 태도로 청하는 모습에 그

                  처녀는 그만 그 수행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 처녀는 앓기 시작했습니다. 상사병이 생긴
                  것입니다. 식음을 전폐하며 앓기 시작하는 딸을 보다 못한 엄마가 그
                  까닭을 추궁했습니다. 그 엄마의 이름은 ‘마등가’였고, 직업은 주술

                  사였습니다. 딸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마등가는 딸을 위해 옳지 못

                  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수행자를 유혹하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아난존자가 탁발을 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
                  다가 주술을 걸어 아난존자의 정신을 홀리는 데 성공을 합니다. 주

                  술에 걸린 아난존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처녀의 집으로 가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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