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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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옷 걸치고 아름다운 꽃 마주하니
              그 느낌 이전과 다르네
              머리카락은 이제 희어만 가는데

              꽃은 작년처럼 붉기만 하네

              아름다움은 아침 이슬처럼 스러지고
              향기는 저녁 바람에 흩어지네
              어찌 꽃잎이 시든 다음에야

              삶의 덧없음을 알아차리리오.         3)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법안이 훌륭한 선사일 뿐 아니라 대단한 시인
          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흥시를 이렇게 완벽하게 지을 수 있는 사

          람은 대시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가 다소 애조를 띠는 것은 당시 남당

          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남당은 후주의
          압박을 받았고 결국 후주에 항복(955)하게 됩니다. 황제라고 하지 않고 군
          주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아침 이슬처럼 스러지고, 향기는 저녁 바람에 흩어지는 건

          단순히 꽃피는 봄날의 풍경일 수도 있고 후주의 압박으로 기우는 남당의
          정치적 상황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법안의 정감
          일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법안은 귀중한 제자인 군주에게 세상의 덧없음

          에 대한 생생한 깨달음과 위로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사

          물은 영원하지 않고, 인간은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이며 그것은 왕이든 거
          지든 마찬가지라고 깨우쳐 주려는 것입니다. 군주 또한 그 자리에서 뭔가


          3)  『五家正宗贊』, 法眼宗 清涼法眼禪師 : 擁毳對芳叢 由來趣不同 髮從今日白 花是去年紅 艶冶隨朝露 馨
           香逐晚風 何須待零落 然後始知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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