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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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는데, 낮이 오고 밤이 오며 시간이 흐르고 참 안온했지만 그때 두려움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다른 애들의 부모님보다 늙어 보여서 부모님이 돌아
             가시면 우리 형제는 어쩌지? 하는 것이 유일한 두려움이었고, 나중에 출

             가의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흥회보다 풍경소리가 좋았던 학창시절



               집안이 넓어서 방이 많았는데 심부름 나온 동자승부터 노스님에 이르기

             까지 항상 스님들의 왕래가 그치질 않았습니다. 약사암에 사시는 스님들
             은 출타했다가 밤열차로 구미역에 도착하면 우리집에서 쉬시고 다음 날 가
             셨습니다. 그런 날에는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시던 아버지는 스님들께 법

             문을 청하여 듣는 것을 즐겨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고등학교 1학년

             까지 우리집의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전생부터 인연이 많아서 그런지 절에만 가면 풍경소리, 염불하는 소리
             를 들으면 의미는 몰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절밥이 항상 꿀맛이었습니다.

             스님들 방에 들어가 보면 가사와 장삼이 걸려 있고 경전이나 염불 책을 올

             려두는 경상과 좌복, 이불만 덩그러니 있는 아무 장식이 없는 승방이 그렇
             게 좋아 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세계명작소설, 세계위인전을 즐겨 읽었

             고, 고등학교 때는 인생에 교훈이 되는 책을 읽고 싶어서 번역본으로 된

             『사서삼경四書三經』,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등의 난해한 책도 읽었는데, 그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하였습
             니다. 쇼펜하우어는 인도 브라흐만교의 베다성전과 불교철학에 대하여 설

             명하면서 정신문명의 최고봉은 인도 고대의 종교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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