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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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는 곧 그곳을 떠나 항주 서호(西湖)에서 30여 년을 사는

            동안 문을 굳게 닫고 누구하고도 교류하지 않았다.가우(嘉祐)연간


            (1061)에 자신이 지은  보교편(輔敎編)․ 정조도(定祖圖)․ 정종
            기(正宗記) 를 대궐에 올리고자 하니,그 당시 임시 개봉윤(開封尹)
            으로 재직하던 한림학사 왕소(王素)가 글을 써 조정에 천거하였다.
            인종(仁宗)황제는 오랫동안 감탄해 마지않다가 그 책을 중서재상
            (中書宰相)한공(韓公:韓愈)에게 내려주니,참정(參政)구양수(歐陽

            修)는 읽은 후 깜짝 놀라 조정의 사대부들에게 칭찬하였다.이 책은
            결국 대장경의 한 편으로 들어가게 되고,스님의 명성은 마침내 천
            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만년에는 영은사(靈隱寺)의 북쪽 영안

            암(永安庵)에 머무르면서 이른 아침이면  금강반야경 을 쉬지 않고
            외웠으며,재(齋)가 끝나면 책을 읽고,손님이 찾아와도 세상일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법담을 나누었다.언젠가는 이런 게를 읊었다.



                 길손 떠나가니 법담은 줄고
                 나이 들어 흰 머리칼 가득하다.

                 客去淸談少 年高白髮饒


               또 한밤중이 되도록 관세음보살을 십만 번 염불한 후에야 잠자

            리에 드니,그의 굳은 수행과 맑은 기풍은 종산(鍾山)용문 청원(龍
            門淸遠:1067~1120)스님과 짝이 되기에 넉넉하다 하겠다.
               지난날 해월(海月)스님에게 보낸 스님의 서간문을 읽어보니 다음

            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종이 이불 한 장을 마련하여 매서운 추위를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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