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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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바다 물맛이
한 방울에 담겨 있고
온 법계의 몸이
티끌 속에 들었으니
생각을 두면 연등불(燃燈佛)의 자리에서도
비야(毘耶:유마거사)의 방에 들어갈 수 없지만
생각을 거두면 손가락 퉁기는 사이에
미륵불의 문이 열리리라.
우리 비조(鼻祖:시조)석가모니께서
처음 설산을 나오실 때 이 모습 보이시니
천백억 티끌만큼 많은 몸과
아흔일곱 가지 대인 모습이
단박에 붓끝 삼매[筆端三昧]로 들어가
이 한 폭의 종이 위에 환(幻)같이 나타나셨네.
손을 드리운 채 맨발로 서서
나발(螺髮:소라모양의 머리)의 머리에
목엔 오색 꽃실 걸으셨네
초연한 모습이
고요하고 깊게
3계의 어리석음을 초연히 벗어나시니
마치 화사한 봄볕이
가는 꽃가지마다 엉겨 있듯
서늘하고 맑은 달이
물마다 찍히듯 하여라
얼음과 차가운 눈 속에서의 고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