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선림고경총서 - 11 - 마조록.백장록
P. 100

100 마조록․백장록


            식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을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라 할 것이며,
            맞지 않는 설명이므로 꾸며서 하는 말[綺語]이라고도 할 수 있겠

            다.사문에게라면 청정한 법 쪽의 허물을 설명해야 한다.즉 있다
            없다[有無]하는 등의 법을 여의고,닦고 증득하는[修證]모두를
            떠나며,그것을 떠났다는 것조차 떠날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다.물든 습기(習氣)를 깎아 없애려는 사문도 탐욕과 성내는 병통
            을 없애 버리지 못했다면 역시 귀머거리 속인이라 할 것이니,그

            에게도 선정을 닦고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한다.
               이승(二乘)의 경우는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다 쉬어 버렸으나
            탐내는 마음이 없어진 경계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긴다.이는 무

            색계(無色界)로서 부처님의 광명을 가리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므로 그에게도 선정을 닦고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하며,깨끗

            하고 더러움을 구별해 주어야 한다.더러운 법이란 탐욕․성냄․
            애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깨끗한 법이란 보리․열반․해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여기에서 비추어 깨달으면[鑑覺]깨끗하고 더러운 양쪽 갈래와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법과 색․소리․냄새․맛․촉감․생각과
            세간․출세간법에 털끝만큼의 애착[愛取]도 전혀 없게 된다.이미

            애착하지 않게 되고 나서는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
            기는데 그것을 처음선[初善]이라 한다.이것은 조복된 마음[調伏

            心]에 안주하는 것이며 뗏목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성문으로서
            이승(二乘)의 도이며,선나과(禪那果)이다.
               애착하지도 않고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지도 않으면 이를 중

            간선[中善]이라 한다.이는 반자교(半字敎)로서 아직은 무색계(無色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