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선림고경총서 - 18 - 조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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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행 장 21


               그 후 물병과 석장을 지니고 제방을 두루 다니면서 항상 스스로
            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
            을 것이요,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

            르치리라.”
               스님께서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趙州城)동쪽 관음원(觀
            音院)에 머무르셨는데,돌다리[石橋]에서 10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주지살이를 하셨는데,궁한 살림에도 옛사람의 뜻을 본받

            아 승당에는 전가(前架:승당 앞에 설치된 좌선하는 자리)나 후가(後
            架:승당 뒤쪽에 설치된 세면장 등)도 없었고,겨우 공양을 마련해
            먹을 정도였다.선상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
            를 노끈으로 묶어 두었는데,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려 하면 그때마

            다 허락지 않으셨다.40년 주지하는 동안에 편지 한 통을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한번은 남방에서 한 스님이 와서 설봉(雪峰:822~908)스님과

            있었던 일을 거론하였다.
               “제가 설봉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태고적 개울에 찬 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설봉스님이 말하였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 입으로 들이마시지 않는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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