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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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록 上 23
날카롭고 그 이치는 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 후 자손들은 걸음
걸이가 넓든 좁든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었다”라고 하였습니다.그것
은 곧 먼저 흥성국사(興聖國師:德山)가 있었고,그 법을 설봉스님이
이었으며,설봉스님이 석두스님의 5대임을 말한 것입니다.
또 이 광집(廣集)의 뒤에 “고산 신안(鼓山神晏)스님은 설봉스님
에게서 법을 얻었으니 석두스님의 6세이다”라고 하였으니,이를 근
거로 한다면 이 역시 하나의 석두가문의 족보가 아니겠습니까.
또 다른 예로 명교 설숭(明敎契嵩:1007~1072)스님은 운문 문언
(雲門文偃:864~949)스님의 4세손으로 석두스님에게는 10세가 되는
분입니다.이 분은 비록 대수가 멀기는 하나 그를 높이는 사람은 그
분을 가리켜 “송나라의 고승은 하늘 아래 이 분 한 분밖에 없다”하
고 있습니다.이 분이 쓴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법을 부촉하고 비밀히 전하는 일에서의 오류를 힘써
파헤치고 있으며,그 가운데 증거로 삼은 잘된 문장들은 하나같이
비중 있는 경론에서 나온 것입니다.인종(仁宗)황제께서 이 책을 읽
으시다가 “도를 위함이지 이름을 위함이 아니며,법을 위함이지 내
몸을 위함이 아니다”라는 구절에서 가상히 여겨 찬탄해 마지않았다
고 합니다.그런 까닭에 그 당시 한기(韓綺),구양수(歐陽修)등 큰 문
장가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여 이 분에게 귀의하였고,이것
으로 종문을 바로잡고 이것으로 조사의 계보를 확정지었던 것입니다.
이제 조사의 계보를 그려 놓은 도표와 그 기록을 살펴보니 석두
스님의 법을 이은 분은 형주(荊州)의 천황 도오스님이고,천황스님의
법을 이은 분은 예주(灃州)의 용담 숭신스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분의 깊고 넓은 큰 지혜로는 정작 5백 년 전의 달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