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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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설봉록


               11.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곳에 있으면서 말 많은 경지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
            다.너희들도 이 하나[一下子]가 좋은 줄을 알겠지만 그것을 알 만한
            사람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이제 잠시 너희들과 따져 볼 일은 자기에 관한 한 가지 일뿐이다.
            이것은 마치 맑은 하늘에 뜬 해처럼 분명한데,멀어지기만 하는구나.
            진여법 아닌 곳이 어디 있길래 사람을 괴롭히며 퇴굴하게 만드는 줄

            을 알지 못하는가.
               내가 형편이 부득이해서 방편으로 너희들에게 ‘바로 이곳이 진리
            다’라고 말하는 것인데,너희들은 그런 줄을 알지 못하니 이를 어떻
            게 하겠나.나는 너희들이 깨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너희들에게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쳤는데,그렇게 말한 것도 이미 너
            희들 머리 위에 똥을 싸 놓은 일이다.너희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자!이제 그만두자.”


               하루는 스님께서 현사(玄沙)스님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두타(현사 사비스님은 널리 두타행을 함)는 어째서 두루 법을

            물으러 다니지 않는가?”
               사비스님이 “달마스님은 동토에 오지 않았고 이조(二祖)는 서천에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그렇구나!”하셨다.



               하루는 남제(南際)장로가 스님의 처소를 찾아와 묻기를,“상대 못
            할 사람이 없구나”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현사스님을 지목하며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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