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9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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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장 229


                   스승은 평소에 암자 짓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한 곳이
                 십여 군데이다.지리(地理)를 늘리고 줄임은 선천적인 지혜[生知]
                 에서 나왔고,자비로 대중을 일깨워 주심은 천성(天性)에서 나온
                 것이다.그러나 정법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문풍(門風)이 높고 엄
                 하여 학인들이 발붙이기 어려웠고,이름이 높고 덕이 큰 사람들
                 만이 주로 귀의하였다.
                   그 중에서도 상수(上首)제자로서 첫째 환암(幻菴)화상이 있으
                 니,지금은 국사 정변지 지웅존자(國師正辯智智雄尊者)가 되었고,
                 다음에 고저(古樗)화상이 있으니,지금은 왕사 묘변지 원응존자
                 (王師妙辯智圓應尊者)가 되었으며,가장 오래도록 시봉하고 스님
                 의 후사(後事)를 감독한 이로서는 철봉(哲峯)화상 등이 있으며,
                 뛰어난 선승들이 많으나 번거로울까 하여 다 쓰지 않는다.


               내[維昌]가 가만히 생각하니 스님의 인품은 마치 동쪽에서 뜬

            해가 천하를 비추다가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왜 그러냐
            하면,저 하늘의 해가 높기는 높고 밝기는 밝지마는 태어나실 때
            에는 꿈에 들어왔고 머무르시던 곳은 희양(曦陽)이라 하였으며 마

            치실 때에는 서산을 넘어간다 하였으니,참으로 신기하구나,이
            무슨 상서인가.밝음을 숨게 할 만한 지혜의 해라야 증험할 수 있
            을 것이다.더구나 사리를 보임으로써 신통광명을 나타내었으니,

            아마도 ‘보월승공(寶月昇空)’의 징험이라 하겠다.또한 ‘원증(圓證)’
            이란 시호는 하늘이 준 것인가,사람이 준 것인가.아아,진실로
            그러하도다.

               또 스스로 생각하건대 스님은 한 나라의 스승으로서 나 개인의
            스승이 아니다.나는 속에 든 것도 없고 붓을 들매 글재주도 없으

            니,변변찮은 글을 빌려 그 높고 큰 덕을 적는다는 것은 실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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