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4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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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나와 물과 젖이 섞이듯 한 가지로 평등하게 될 것입니다.이
에 백장 대지(百丈大智)선사의 선원청규(禪苑淸規)로써 푹 젖도록
훈도하여 평상시의 위의는 엄숙하고 진실하며,부지런히 법을 묻
고 때를 맞추어 종과 목어를 치면서,조사의 풍모를 다시 일으키
고 5교(五敎)가 각각 그 법을 널리 펴게 해야 합니다.이렇게 복을
받들게 하면 국운은 뻗어나고 불일(佛日)은 밝아질 것이니,어찌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러하옵고 일찍이 관찰하오매 왕기(王氣)가 이 도읍에 있기는
하지만 처음 전성하던 때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만일 남
쪽 한양(漢陽)으로 옮겨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행하오면,자연히
교화는 천하에 빛나고 은혜는 만 중생에게 입혀질 것입니다.”
현릉은 “매우 훌륭한 말씀입니다”하고 좌우에 명령하여 그대
로 행하게 하였다.그러나 불행히도 간사한 말이 방해를 놓아 스
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승도들은 그저 답답해할 뿐이
었다.스님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쳐 주고 왕의 통치를 도운
일이 명실상부하게 이러하였다.
정유년(1357)2월에 스님은 귀신같이 기미를 알아채고 게송을
지어 왕사의 직을 사퇴하기를 청하셨다.왕의 마음은 더욱 간절했
으나 스승은 몸을 빼서 소설산으로 들어가셨다.현릉은 스님의 뜻
을 알고 법복과 인장을 스님에게 보냈다.
그때에 고담 적조 현명(古潭寂照玄明)선사라는 훌륭한 분이 있
었다.미원장의 은성사(隱聖寺)에 객승으로 있다가 태고암가를 보
고는 공경하고 찬탄한 뒤에 소설산으로 찾아갔다.그때 마침 스님
은 다리에 병을 앓고 계셨다.고담은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