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5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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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장 225
말하였다.
“스님,혹시 과로가 아닐까요?”
“ 그렇소.”
“ 놓아버리시고 근심치 마십시오.”
스님은 그러겠다 하고 시자에게 금란가사와 주장자를 가져오라
하여 그에게 주면서,“여우거든 때려 주고 사자거든 길러라”하셨
다.고담은 꿇어앉아 가사를 받아 입고 주장자를 들고는 힘차게
일어서서 악!하고 할(喝)을 한 번 하면서 동시에 때릴 형세를 지
었다.스님은 “원래 그런가”하시니 고담은 절하고 물러갔는데 조
금 있다가 스님은 병이 나았다.
무술년(1358)에 현릉의 명을 받들어 성을 수축하게 되었다.스
님은 글을 올려 비밀히 홍적(紅賊)의 난리가 있을 것을 고하였다.
기해년(1359)가을에는 포상(苞桑)*의 형상을 관찰한 뒤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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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彌智山)에 들어가 미리 초당(草堂)을 지어 두고는 사람들에게
“피난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주셨다.
신축년(1361)11월에 홍건적이 서울을 함락시켰으니,앞에서 말
한 예언이 맞았다.현릉은 안동(安東)으로 피난 가고,스님은 먼저
지어 두었던 초당에 계셨는데,그곳 사람들이 피난해 와서 그 덕
을 많이 입었다.
임인년(1362)봄에 적이 패해 물러갔다.그 해 가을에 왕은 청
주(淸州)에 있으면서 사신을 보냈으므로 스님은 양산사(陽山寺)에
머무르시게 되었다.스님은 대중을 거느리고 밤낮으로 애써 옛것
은 다 헐어내고 새로 중수하니,밭과 농막이 복구되고 목어와 북
*포상(苞桑):뽕나무 뿌리.근본이 확고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