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7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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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입니다.그런데 지금 멀리 외국에 가려는 것은 반드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왕께서 자세히 살피소서.”
그 말이 매우 절박하였으므로 현릉은 부득이 따랐다.신돈은
스님을 법사(法司)에 내려보내 여러 가지로 신문한 뒤에,스님의
측근들이 스님을 모함하도록 항복받아 스님을 속리사(俗離寺)에
가둬 두었다.기유년 3월에 현릉은 후회하고 스님에게 소설산으로
돌아오기를 청하였다.신해 7월에 신돈을 베어 죽였다.
현릉은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추어 스님을 국사로 높여 봉하고,
영원사(塋原寺)에 머무르시기를 청하였으나 스님은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그러나 왕의 명령으로 멀리서 7년 동안 일을 맡아보
다가,무오년 겨울에 지금 임금(우왕)의 명령으로,비로소 그 절에
가서 1년 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신유년 겨울에 양산사로 옮겨 주지로 취임하던 날,왕은 다시
국사로 봉하였으니 그것은 선군(先君)을 생각해서였다.
임술년 여름에 소설산으로 돌아와 12월 17일에 약하게 병으로
앓더니,23일에는 문도들을 불러 말하였다.
“내일 유시(酉時)에는 내가 세상을 떠날 것이니 군수에게 청하
여 인장을 봉하도록 하라.”
그리고는 세상을 하직하는 글[辭世狀]몇 통을 입으로 전하였
다.때가 되자 목욕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네 구로
된 게송을 읊고 소리가 끊어지자 돌아가셨다.이 소식이 왕에게
들리자 왕은 매우 슬퍼하고,계해 정월 12일에 향을 내렸다.
화장하는 날 밤에는 그 광명이 하늘에 뻗쳤고 사리가 수없이
나왔다.그 사리 백 알을 왕에게 올렸더니 왕은 더욱 공경하고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