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8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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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하여 유사(攸司)에게 명하여 원증(圓證)이란 시호를 내렸다.중
            흥사 동쪽 봉우리에 탑을 세워 이름을 보월승공(寶月昇空)이라 하

            고 석종(石鍾)을 만들어 세 군데에 사리를 간직하였다.가은(加恩)
            의 양산사(陽山寺)와 양근(楊根)의 사나사(舍那寺)이며,이 절 부도
            곁에 그것을 세운 뒤에 석탑을 만들어 간직한 곳은 미원(迷源)의

            소설사(小雪寺)이다.
               내 가만히 생각하니,선왕(先王)도 지극히 불교를 숭상하였으나
            참소가 그 사이에 횡행하였고,태고도 불교를 위해 지극히 힘썼으

            나 화가 몸에 미쳤으니,이것은 인연의 과보로서 성인도 면할 수
            없었던 것인가 한다.심지어 그 명성은 중국에까지 넘쳤고 사리는
            고금에 빛났으니,그것이 어찌 아무 시대에나 흔히 볼 수 있는 일

            이겠는가.
               나 색(穡)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명(銘)을 짓는다.



                 스승의 마음이여,바다가 넓어 하늘이 다다랐고
                 스승의 자취여,배를 띄우고 지팡이를 날렸도다
                 돌아와서는 지기(知己)를 만나 왕의 스승이 되었고
                 소설사에서 몸소 밭 갈매 숨고 나타나기 때를 따랐다
                 그때는 취성(鷲城:신돈)이 외람되이 형권(刑權)을 희롱했으나
                 구름이 해를 덮은 것 같거니 그 빛에 무슨 손해 있으랴
                 달은 곤륜(崑崙)에 떨어졌지만 남은 광명이 그대로 있었으니

                 사리의 빛나는 광채 옥문(玉門)을 비추었다
                 구름 끝에 솟아난 저 푸른 삼각산
                 그 밑에 탑을 세우니 나라와 함께 길이 편안하며
                 스님의 풍도는 대동(大東)에 널리 퍼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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