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9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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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암주서 249
형은 설당(雪堂)선사가 오래 전에 지은 불안정속기(佛眼正續
記)라는 책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지난번 형의 편지를 받았을
때 다른 말씀만 있고 안부는 듣지 못하였는데 그것도 벌써 10년
이 되었습니다.그래서 입에 오르는 대로 게송 한 수를 지어 봅니
다.
오(吳)와 초(楚)에서 서로 그리워한 지 아득하다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편지 한 장 받았네
세상에는 백 년 사는 사람이 없는데
편지를 받았다 하나 몇 번이나 오가겠나.
吳楚相望亦遠哉 十年方得一書來
世無百歲之人也 縱有書來能幾回
피차 편지를 주고받음이 드물다고 하나 대원경지라는 도를 놓
고 보면 어찌 먼 일이라 하겠습니까?어제 오가는 사람에게서 문
(聞)형이 수봉사(秀峰寺)에 주지하라는 명을 강력히 거절했다는 이
야기를 얼핏 들었습니다.설정(薛廷)이 덕산(德山)선사에게 요청했
던 고사를 인용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반드시 그 생각을 시행
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생각됩니다.그런 까닭에 게송 두 수를 지
어 나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로 헤어진 지 몇 해나 지났나
강호에 떠도는 명성만 들리네
숨을 둔(遯)자로 암자이름 짓더니만 참으로 숨어 버렸소
하늘 사람들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