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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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께서는 그저 유희 삼아[遊戱三昧]한 권의 책을 만들어 위로는 옛

            스님의 숨겨진 빛을 나타내시고 아래로는 후학들의 고질병을 벗겨 주신
            다면 불법문중의 경사가 되리라 믿기에 감히 간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야 참으로 아름답다.그러나 내 말은 문장이 될 수 없
            으니 말을 하되 문장으로 잘 표현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먼 훗날까지 전
            해질 수 있겠는가?이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중은 또다시 말하였다.
               “이제 불법은 쇠하고 선배 스님들도 거의 사라지셨습니다.이런 때
            노스님께서 먼 곳에서 돌아오실 줄은 실로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는데,
            노스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하신다면 장차 누가 이 일을
            맡겠습니까?문장이 잘되고 못 되고를 어찌 따지겠습니까?사실대로 기

            록하여 그 일을 밝힐 수만 있다면 충분합니다.바라옵건대 굳이 사양하
            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나는 평소 스승과 도반이 강론했던 법어들과 강호에서 보고
            들은 일 가운데 기연(機緣)의 문답과 선악의 인과응보,그리고 말 한마
            디,행동 하나,낱낱의 처신 등을,시대의 선후와 인물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후배들을 일깨울 수 있는 일이라면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사
            실에 근거하여 기록하고 이를  산암잡록(山菴雜錄) 이라 이름하였다.

               지난 송대(宋代)에 큰스님이 편수한,이른바  나호야록(羅湖野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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