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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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4)
나는 평소 병 많은 몸으로 노년에 일본의 주청(奏請)에 관한 일로 조
정의 부름을 받아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다.이에 혼자 생각해 보니 설령
일본을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겠나 싶었다.평
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성상폐하
께서 나를 가엾게 여겨 특별히 일본의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궁궐에
머무르게 하셨다.그리고 나서도 온갖 병들이 끊임없이 나의 몸을 침범
하여 세 번이나 죽을 뻔했지만 또한 천행으로 폐하께서 나를 불쌍히 여
기시고 천동사(天童寺)옛 절로 돌아가도록 명하시니,친구들은 내가 마
치 다시 세상에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반겼다.
내 나이 칠십에 가까운데 만 번 죽을 고비를 겪고 다시 한 번 삶을
얻게 되었기에,이제 문을 닫고 모든 인연을 끊은 채 여생을 마칠까 하
였는데 법질(法姪)장경중(莊敬中)이 자주 나의 암자에 찾아와 이렇게 청
하였다.
“당․송 시대 큰스님들의 말씀과 저서는 끊이지 않고 간간이 세상에
나왔었는데 원대부터는 이러한 일이 드물게 되었습니다.그리하여 근래
큰스님들의 법문과,총림의 귀감이 될 만한 아름다운 말씀이나 행실들이
대부분 없어져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노스님께서는 총림의 전성시대
를 맞이하여 많은 큰스님을 두루 참방하여 넓은 견문을 지니셨습니다.
제가 항상 노스님을 모시면서 들은 한두 가지 일만 해도 모두 이제껏 듣
지 못했던 이야기로서 저를 더욱 깊이 일깨워 주었습니다.바라옵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