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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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말을 통해 밝혀지고 말은 덕에 의해 전해진다.그러므로 덕 있
는 자의 말은 한 시대 사람에게만 믿음을 줄 뿐 아니라,후세까지도 의
심 없이 전해진다.
서중(無慍恕中:1309~1386)스님은 서암사(瑞岩寺)의 일을 그만두고
태백산 암자에 한가히 머무르면서 스스로 도를 즐겼다.쓸쓸한 방에는
물건들이 넉넉하지 못했는데도 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신발이 매일 문
밖을 메웠다.그들은 밀어내도 가지 않고,어쩌다가 한 말씀 얻어들으면
천금처럼 귀중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감로수(甘露水)나 제호(醍
醐)를 마신 듯 마음과 눈이 한층 빛났다.이는 스님께서 평소 여러 큰스
님의 문하를 참방하여 보고 들었던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실들을 마음속
깊이 원만히 체득해서 말로 표현하였기에,아름답게 꾸미지 않아도 자연
히 훌륭한 격식을 이룬 것이리라.총림의 큰스님과 유학의 선각자,그리
고 아래로는 마을의 어린아이들까지 그들을 격려시킬 수 있는 선한 이야
기와 그들을 경계시킬 수 있는 악한 이야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들려주
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고 이를 기록하여 산암잡록(山菴雜錄) 이라는
책으로 만들어 냈다.
취암사 주지로 있는 그의 제자 현극 정공(玄極頂公)이 이를 간행하면
서 멀리 서울까지 찾아와 특별히 나에게 보여주었는데,나는 읽으면서
차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이를 계기로 나는 “태평성대의 말이란
모두 바른 법을 따르므로 거친 말과 부드러운 말이 모두 진리다”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