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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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시대 중국의 불교계 상황을 개괄해 보고자 한다.12C,치열

            한 부족전쟁에 휘말려 있던 몽고초원은 하나의 강력한 질서를 희구함으
            로써 수대에 걸친 성공적인 정복전쟁을 통해 마침내는 통일제국을 건설
            하였다.이들은 중원을 정복했던 몇몇 이민족들이 한족에 동화되려는 노
            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정복지 경영에 있어서 철저히 한족을 차별하
            고 탄압하는 정책을 폈다.이런 강압정치는 불교계에도 반영되어 원래
            불교는 어느 때보다도 국가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었다.

                원사 석로전(元史 釋老傳)의 “원흥숭상석씨(元興崇尙釋氏)”라는 기
            록에서 볼 수 있듯이 원 왕실은 불교를 숭배하였다.서장(西藏)지역에서
            는 불교의 일파인 라마교를 받아들인 한편,한지(漢地)에서는 송대(宋代)
            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한된 범위 안에서나마 불교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원 왕실은 국가의 복을 기원한다는 명분 아래 숭불정책을 표방

            하여 불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한편,중국의 역대 왕조가 그래 왔듯이
            불교세력을 관리하기 위한 통치기구를 강화하고 그들의 활동을 제한하였
            다.민생을 돌보지 않은 채 불사를 일으키고 사원이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부패를 묵인하였으며,승려자격증을 상품으로 팔아
            먹기까지 하였다.이때 일부 승려들의 타락상은 극에 달했다.이 책에 나
            오는 승려 엄길상(嚴吉祥)은,원사(元史)의 기록에 의하면,‘도공물 축처
            노(盜公物 畜妻孥)’라는 죄목으로 어사대의 규탄까지 받았던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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