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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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봉이 이르되 “노승이 주지의 업무가 번거롭구나!”하였다.
               -뒤통수에서 뺨을 보는 격이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근대 장로 청료(長蘆淸了)화상은 천동(天童)과 동문[同參]으로
                서 1,700대중과 함께 살았는데 죽암 규(竹庵珪)와 더불어 죽솥
                을 열어 여름을 지내고 승당 방을 나누어 입실하였지만 설봉과
                삼성은 다른 세대에 같은 가풍을 이룬 사이다.

                  대위 철(大潙喆)이 이르되 “삼성은 가히 만 길 용문(龍門)에
                일찍부터 나그네 노릇에 익숙했고,설봉은 맹상군(孟嘗君)이 문
                을 열어 놓고 ‘어찌 큰스님을 두려워하리오?’한 것과 같다”하
                였으니,삼성이 질문을 던진 것은 가시덤불 속에서 아교동이를
                끌어내려는 격이라 해도 무방하겠다.한편 설봉은 미리 30보
                앞에서 그가 스스로 젖어들고 스스로 얽어매는 것을 보고 이르
                기를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거든 그때 가서 일러주리라”하

                였으니,기이하고 괴이함이 마치 국수(國手)가 바둑을 놓을 때
                몇 수 앞을 미리 보는 것과도 같다.
                  삼성은 그 한 수로는 승패의 갈림길이 분명치 않음을 보고
                따로 한 길을 걸으면서 이르되 “천오백 명 거느릴 선지식이 말
                귀도 못 알아듣는다”고 하여서 법굴의 발톱과 어금니[法窟爪
                牙]를 써서 산채로 잡으려 들었다.그러나 설봉은 여유 있게
                그저 말하기를 “노승이 주지의 일이 번거롭다”하였다.이에
                대해 보복(保福)은 이르기를 “다투면 부족하고 양보하면 남음

                이 있다”하였고,설두는 이르되 “아깝다!놓아버리지 말고 30
                방망이를 주었어야 했다.그 방망이는 한 방망이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거늘 다만 그런 작가를 만나기 어려울 뿐이다”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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