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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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불학체계와 그 특징 • 11
알려졌다. 3)
퇴옹의 저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올바른 관점과 깊
4)
은 이치를 결택 한 ‘결택심리(抉擇深理)’적인 책이다. 『백일법문』이 대표적
3) 퇴옹의 불학체계를 연구할 때 저서의 출판연도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1940년 동화사
에서의 깨달음, 1947년 가을- 1949년 여름(하안거)의 봉암사 결사, 1949년 겨울(동안
거)-1955년 여름의 묘관음사·문수암·천제굴 등에서의 수행, 1955년 겨울 -1964년 여
름의 파계사 성전암 폐관 등을 통해 이미 자신의 불교관을 확립했고, 1966년 김룡사에서
이뤄진 ‘운달산 법회’와 1967년 동안거 기간 중 해인사에서 진행된 ‘백일법문’ 등을 통해 불
학체계를 분명하게 밝혔다. 운달산 법회에서 『반야심경』, 『육조단경』, 『금강경』, 『신심명』, 『증
도가』 등을 대중들에게 강설했고, 백일법문 당시 『백일법문』, 『본지풍광』, 『선문정로』, 『영원한
자유』, 『신심명·증도가』, 『돈오입도요문론』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파했다. 다만 설법한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그래서 저서의 출판연도와 퇴옹의 사
상체계 형성은 연관성이 크게 없다. 오히려 수행이력 분석을 통해 사상체계 형성을 추적하
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한편, 법문한 내용을 제자들이 정리해 책으로 펴내는 것은 전 세계
적인 관행 가운데 하나다. 불교의 경전들, 공자의 『논어』, 천태지의(天台智顗)의 『마하지
관』, 왕양명의 『전습록』, 『바이블』 등 수많은 책들이 이런 형식으로 출간됐다. 법문(法門)과
출판된 책을 분리해 ‘본인의 저서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책이 서가(書架)에 있으므로 그 책 저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누구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 또 가능하다면 많이 읽는 것
이 좋다. ‘어떤 책이 서가에 있으므로 그 책 저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학문
하는 학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서가에 있는 그 책과 그 책을 읽은 사람의 저서를 비
교분석해 연관성을 따지고 확인한 다음 영향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제대
로 된 학자의 연구방식이다.
4) 결택은 본래 경전 구절을 해석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붓다가 말한 경(經)은 불교도들에게
하나의 규범이자 법(法), 즉 진리이다. 이 ‘법’을 해석하는 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 혹은
‘대법(對法)’이라고 한다. 아비달마의 형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①우파제사(優婆提舍,
upadeśa)는 붓다가 말한 것을 간단하게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②마달리가(摩呾理迦,
mātṛkā)는 전체의 요점을 해석해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본모(本母)라고 부르기도 한
다. ③결택(抉擇)은 경의 구절에 대한 다양한 해설 가운데 하나를 채택하는 것으로 주로
명상(名相, 용어설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어떤 명상(名相)이 가진 다양한 의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본고는 “지혜로 의심을 잘라내고 이치로 (대상을) 분석해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뜻으로 결택을 사용했다.